[올림픽 톺아보기]브라질 국민 불만에 올림픽 성화도 수난

  • 등록 2016-08-01 오후 1:55:28

    수정 2016-08-01 오후 2:02:35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가 성화 봉송 행사에 참석해 성화봉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올 4월 채화된 리우 올림픽 성화는 2만km에 달하는 릴레이 봉송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 국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가장 신성하게 다뤄야 할 성화도 덩달아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26일에는 20대 청년이 성화를 향해서 물 양동이를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13일에는 30대 남성이 소화기로 성화를 끄려다가 실패한 일도 있었다. 지난달 21일에는 성화 봉송 행사에 동원된 재규어가 사살돼 전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달 27일에도 시위대가 성화 봉송로를 막아서 경찰이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하루가 멀다하고 성화를 꺼뜨리거나 훼손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다보니 브라질 올림픽위원회는 연방경찰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성화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성화대에서 타오른다. 성화대에 불이 붙는 순간 공식적으로 올림픽이 시작되고 성화대에서 꺼지면 올림픽이 막을 내린 것이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 남쪽 피자티스에 위치한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의식은 고대 올림픽부터 이어져왔다. 근대 올림픽에서 처음 성화가 등장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이다. 그때는 성화대가 따로 있지도, 성화 봉송도 이뤄지지 않았다.

성화대와 성화 봉송 의식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38년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평화의 상징인 성화대와 성화 봉송의 아이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높은 위치의 성화대는 나치의 절대 권력을 의미했다. 그리스에서 베를린까지 이어진 성화 봉송로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후 독일군의 이동 루트로 변질됐다.

나치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 1948년 런던올림픽 때도 성화 봉송 행사는 이어졌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부터는 성화 봉송이 의무화됐다.

매번 올림픽 마다 마지막 성화 점화 주자가 누가 될지가 가장 큰 관심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고 손기정옹과 임춘애를 거쳐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씨와 마라톤선수 김원탁,소녀무용가 손미정이 승강기를 타고 성화대까지 올라가 동시에 점화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왕년의 복싱영웅 고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점화를 해 진한 감동을 선물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우상이었던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물속에서 솟아올라오는 원형 성화대에 불을 붙여 장관을 연출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그리스의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 니코스 카클라마나키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중국의 체조스타 리닝,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영국 스포츠의 어린 유망주들이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섰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선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가 성화 최종 주자로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브라질의 전 요트 국가대표 토르벤 그라에우와 브라질 테니스 영웅 구스타부 쿠에르텐도 최종 주자 후보로 거론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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