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라디 세나이실 이라크 대표팀 감독과 울리 슈틸리케 한국 대표팀 감독의 상반된 차림새였다. 트레이닝복과 정장의 차이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세나이실 감독은 투명한 우의를 입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처럼 비를 맞아가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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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은 볼을 들고 뛰지만 않았지 선수들처럼 90분 내내 서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대표팀의 수장으로서 선수들이 느끼는 고통만큼은 분담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리더의 이러한 모습은 팀원들의 동기 부여에 큰 힘을 보탠다. 자신은 발을 빼고 팀원들을 앞세우는 리더는 리더라고 할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의 감정을 조율하고 있다. 한껏 들뜰 수 있는 이라크전 승리 후 그는 “대회를 치르면서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결승전에 가서 좋은 경기를 하려면 보완할 점이 많다”며 당근과 채찍을 함께 줬다. 이어 “한국이 27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다만 우승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훌륭한 성과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자만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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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사상 첫 16강에 올려놓은 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역사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냉정을 잃지말자’는 그의 주문은 통했다. 한국은 마침내 4강에 진출하며 축구 역사를 다시 썼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을 네 차례나 탔다. 10여 년간 독일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그는 자국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와 비교되기도 했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선진 축구를 접해 온 리더는 역시 달랐다. 축구에 관한 실무적인 지식과 안목은 기본이고, 이성적인 마인드와 헌신하는 자세까지 겸비했다.
박주영(29·알샤밥)을 버리고 이정협(23·상주상무)을 선택한 것은 결코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이 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상주 경기를 5차례나 보러 갔다. 선수를 보는 안목과 끈기, 도전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 ‘무명’ 이정협은 새로운 축구인생을 맞이하게 됐다.
“잘하든 못하든 책임은 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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