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망상가 정재영 vs 미래를 좇는 우석..이들의 묘한 하모니

  • 등록 2013-11-26 오후 5:18:49

    수정 2013-11-26 오후 6:07:52

영화 ‘열한시’로 돌아온 배우 정재영이 25일 서울 사직동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권욱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엘리시움’. 사실 이런 게 SF 영화다. 우리 영화는 아닌데. 현재의 이야기다. 그거 잠깐 다녀오는 거, 겨우 하룬데 뭘. 그리고 가서 뭔가를 해야 또 SF 영화인데, 우린 또 금방 갔다 오니까 딱히 하는 것도 없다, 하하.”

술술 나왔다. 이야기꾼 같았지만 ‘사석’이라 그렇단다. 막상 자리 깔아주면 못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기자의 노트북 앞에 붙어있는 영화 ‘엘리시움’ 비표 스티커를 본 정재영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정재영은 국내 최초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타임 스릴러 영화 ‘열한시’(감독 김현석)에서 연구원 우석을 연기했다. 정재영은 원래 SF 영화를 좋아하고, 우주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IT 뉴스도 찾아 읽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를 못 본 게 지금 가장 아쉽다. ‘엘리시움’ 비표 스티커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입이 풀린 건 당연해보였다.

“우리나라 어떤 영화 캐릭터 중에서도 최고가 아닐까. 성과가 대단하잖냐. 누가 타임머신을 만드나. 학벌도 최고학벌이고, 연구원이다, 연구원! 평소에도 이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런 머리와 그런 재능, 학벌을 가지고 보통은 현실적인 일을 하기 마련이다. 변호사가 되거나, 금융인이 되거나. 그런데 천체물리학자, NASA 회원들, 뭐 그런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평생 시간을 쏟아도 ‘요만한’ 걸 이룰까 말까 하는 거, 그런 거에 매달리는 사람.”

“요만~큼”이라면서, 벽에 등을 기대 앉았던 정재영이 몸을 앞으로 바싹 당긴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티끌 만한 공간을 만든다. 이야기에 집중해 생각을 이어가는 힘이 대단했다. 계속 이어 정재영에게 물었다. 어찌 보면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순수한 이들이 아닐까. 영화 속 우석도 암에 걸렸던 아내를 위한 약을 미래에서 가져오고 싶다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차가운 이성의 영역에서 연구를 거듭하지 않았나. 세상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학문에 매달려 있어보여도 실상은 아주 순수하고 감동적인 꿈을 꾸는 이들이 우석과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맞는 거 같다.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은 꿈을 쫓아간다. 현실을 좇는 사람들은 못할 거다. ‘허상’이라고 생각할테니까.”

“천체학자, 물리학자. 평생 시간을 쏟아도 ‘요만한’걸 이룰까 말까 하는, 그런 거에 매달리는 순수한 영혼이죠.”(사진=권욱기자)
‘열한시’에서 우석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타임머신을 만드는 이유, 미래로 가고 싶은 이유, 모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있지만, 정작 현실 속 ‘사람’들은 그 때문에 외롭다. 그 때문에 힘들고, 그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두운 거라고, 뭔가에 미쳐 당장 눈 앞에 것이 안 보이는 거다”는 정재영의 말에선 우석에 대한 동정도 느껴졌다.

“나도 실제로 우석과 닮은 면이 있다. 찰영할 땐 촬영한다고, 놀땐 쉰다고, 그렇게 핑계를 대며 가족에게 소홀하다. 아이들에게나 아내에게나 그렇다. 지금은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작품과 사생활을 구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땐 더 소홀했다. 게다가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영화 ‘김씨표류기’, ‘아는 여자’, ‘이끼’, ‘실미도’ 등 정재영이라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돌이켜 보면 ‘열한시’의 우석은 전작의 캐릭터들과 많이 달랐다. 엘리트이고, 냉철하고, 한 가지에 미쳐있다. 광기도 있고 해학도 있다. 이기도 있고 희생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열한시’의 우석과 정재영을 잘 매치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또 이야기를 나눠본 뒤엔 은근히 잘 어울리는 우석과 정재영의 ‘케미’에 의외성을 발견하게 됐다.

“내 생각에, ‘열한시’ 같은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식인들이 잘 안 볼 것 같다. 허황된 거라고 생각하니까. 많이 알면 알수록 꿈은 점점 없어지고, 너무 많이 이해할 수록 고집도 없어지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통달하면 할수록 연기나 영화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다. 연기를 빌미로 순수한 척, 싸움 잘하는 척, 과학자인척, 대놓고 ‘내숭’을 떨 수 있어서 좋다. 모든 걸 알고, 이해한다 하면 남의 인생을 내 인생처럼 사는 그 내숭이 어디 재미있게 느껴질까?”

‘열한시’는 정재영이 우석이란 인물의 탈을 쓰고 미래를 아는 척,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척, 신처럼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척, 자기가 하는 일은 다 맞는 척, 실컷 내숭을 떠는 모습을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배우 최다니엘과 김옥빈, 박철민, 신다은, 이건주 등이 호흡을 맞췄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 조작단’ 등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8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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