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제프 배니스터, 운명도 거스른 감동의 이력서

  • 등록 2014-10-17 오후 5:25:27

    수정 2015-04-14 오후 1:18:31

[이데일리 정재호 기자] 존 대니얼스(37) 텍사스 레인저스 단장은 테리 프랜코나(55·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나 클린트 허들(57·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감독)을 ‘롤 모델’로 그들 같은 성향을 지닌 감독을 뽑고 싶다고 공공연히 흘리고 다녔다.

나란히 ‘명장’으로 꼽히는 프랜코나와 허들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끈기’다. 헝그리 또는 악바리 정신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끈기라는 단어를 염두에 둔다면 내년 곧바로 월드시리즈(WS) 우승에 도전하게 될 텍사스 구단이 왜 무명의 제프 배니스터(49)를 차기 사령탑으로 낙점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운명은 그에게 야구를 떠나라고 했다

피츠버그 벤치코치였던 배니스터는 선수들의 타격연습이 끝나면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몇 시간씩 덕아웃에 홀로 앉아 햇볕을 쬔다. 침묵 속의 편안한 그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살아보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듯 하다.

야구와 운명은 배니스터를 제거하려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끝내 그럴 수 없었다. 밟으면 일어나고 밟아도 또 일어나는 그였다. 그렇게 그는 운명을 거슬러 마침내 마음의 고향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으로 우뚝 섰다.

1965년 오클라호마주 웨더포드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텍사스주에서 다닌 배니스터는 스스로를 텍사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림집도 텍사스에 꾸려놓고 오프시즌이면 그곳으로 돌아와 생활한다.

총 28년의 프로야구 커리어를 거치며 그는 항상 ‘운명의 벌’을 받았고 그것과 처절하게 싸워왔으며 끝내 이겼다.

제프 배니스터(오른쪽)가 겸손한 자세의 러셀 마틴(왼쪽)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배니스터는 그 시작을 고등학교 때라고 되새긴다. 마냥 야구에 푹 빠져 살던 꿈 많던 고교 시절 ‘골암(뼈에 생기는 암)’에 걸렸고 무려 7번에 걸친 왼쪽 발목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운명이 내린 고약함은 주니어 칼리지(2년제 대학) 시절이던 1983년 훨씬 혹독해졌다. 텍사스주 알빈에서 펼쳐진 경기 도중 포수였던 그는 홈플레이트 충돌로 목이 크게 뒤로 젖혀지며 순간 온몸이 마비되는 충격적인 증상을 겪게 된다.

원래 뛰지 않기로 했던 경기였는데 마침 멀리서 찾아온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가 배니스터를 직접 보고 싶다고 감독에게 통사정을 해 나섰던 그날 그만 홈 블록킹 상황 도중 슬라이딩 대신 살려고 점프를 했던 주자의 무릎에 머리를 정통으로 강타당하고 고개가 완전히 뒤로 꺾이고 만 것이다.

나중에야 그게 ‘척수 압박’이란 걸 알았다. 그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뒤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야구선수를 넘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입원 당시 225파운드(약 102kg)에 달했던 거구가 퇴원할 때 139파운드(63kg)로 쪼그라들어 있었을 만큼 목숨을 건 죽을 고비가 반복됐다.

불구 위기 앞에서 ‘빅리거’될 거라던 청년

평생 불구가 될지도 몰랐던 그 순간을 배니스터는 “병원으로 실려 갈 때 의사에게 물었던 첫 질문은 ‘언제 일어나 야구연습을 할 수 있겠느냐’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니스터의 전언에 따르면 그러자 의사는 침착하게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육체를 덜 쓰는 다른 분야를 알아보는 게 현명할 것 같다”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배니스터는 웃으면서 다시 그에게 “나는 장차 메이저리그에서 뛸 거다”고 응수했고 그러자 의사는 “최고로 운이 따른다고 해도 뛰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일 테다”며 비관했다.

배니스터는 회복하는 데만 1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의사의 예상이 틀렸음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주니어 칼리지가 선정한 ‘올-아메리칸(미 전국 최우수선수)’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야구 장학금을 받고 휴스턴대학교로 진학했다.

뒤이어 의사에게 던진 첫 마디대로 진짜 메이저리거가 됐다. 1986년 드래프트에서 25라운드 지명선수로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프로선수 생활은 썩 빛나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만 7시즌을 보냈는데 그 기간 목 마비를 계기로 각별한 사이가 됐던 의사와 할아버지, 아버지(배니스터는 왼쪽 팔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념한 문신을 새겨놓았다)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꿈의 메이저리그 무대는 만 26세이던 1991년 딱 한 번 밟아봤다. 그는 당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올스타출신 투수인 댄 페트리(55)를 상대로 내야안타를 쳐낸 뒤 다시는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배니스터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내 메이저리그 타율은 10할로 영원히 얼어붙어있을 것이다”고 지금도 웃으면서 밝은 면만 보려 한다.

밥 너팅 파이어리츠 구단주는 “배니스터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고 놀랄 만한 인생 이야기를 지녔다”며 “그가 매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성품은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발전케 한다. 클럽하우스와 우리 조직 전체를 통틀어 진짜(된 사람)라고 생각한다. 나는 제프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죽어도 그만 두는 법은 없다’고 외치는 감독

야구에서 떼어놓으려는 운명의 장난에 맞서 끈질기게 버텨온 그의 인생(야구)철학은 그렇게 굳어져갔다.

바로 “죽어도 그만두는 법은 없다”다. 비록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지도자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신념이다.

배니스터는 텍사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면 12살인 아들 녀석에게 “혼신을 다해 뛰어 1루 베이스에 닿고 심판의 세이프 콜을 보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만족감이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아들이 “모두가 홈런치길 원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 아니라고 혼을 낸다. 삶은 결코 쉽지 않고 삶에서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고 강조한다. 어렵게 얻은 것이야말로 훨씬 큰 만족감으로 다가온다고 타이른다. 배니스터는 그런 사람이다.

1993년 만 28세에 일찍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베니스터는 피츠버그의 마이너리그 코디네이터 및 감독으로 일했고 2010년 빅리그 벤치코치로 발탁돼 허들 감독을 보좌했다.

그는 지난해 1992년 이후 피츠버그의 21년만 포스트시즌(PS) 진출에 공을 세운 숨은 조력자로 널리 정평이 나 있다.

너팅은 그런 그의 리더십에 대해 “팀에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심장으로 우리를 앞에서 끌어줬다”고 평가했다.

배니스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레인저스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18일(한국시간) 레인저스의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텍사스의 제25대 감독으로 부임하는 배니스터는 절대 포기를 모르는 끈기와 집념을 선수단에 제일 먼저 주문할 게 뻔하다.

끈기와 노력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추추 트레인’ 추신수(32·텍사스 레인저스)와 누구보다 찰떡궁합일 듯 보여 그들이 만들어갈 내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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